Khay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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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공지 by 하늘

1.

 이 블로그를 볼때 ‘맑은 고딕’, ‘나눔고딕’ 쓰시면 좋습니다.

 스킨 바꿔서 그런거 없슴돠.

2.

 이 블로그에서 참고문헌을 제시한다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참고문헌 작성법’에서 소개한 양식들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유용한 사이트들:
a.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출간한 도서들은 거의 대개(모두인지는 잘 모르겠네요)가 PDF 파일로 온라인에서도 제공됩니다.
b. 이란 백과: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백과사전. 다만 항목들 간의 고유명사 표기가 일관되지 않는다는 점, 아직 모든 항목이 온라인 버전으로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조금 아쉽습니다.
c.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중동연구』에 게재된 논문들을 PDF 파일로 제공해줍니다.
d.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이 블로그의 외래어표기는 대체로 이 사이트에서 제공한 것에 따릅니다.
e. 건국대학교 중동연구소: 중동에 대한 여러 논문들을 PDF 파일로 제공합니다.


4.

현재 프로필 사진은 16세기 중반 사파비조 치하의 이란에서 제작된 “A HEAVILY ARMED UZBEK” 입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크리스티즈의 설명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위키백과 영문판에도 이 그림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 링크를 타고 가시길. 그림을 다운 받기는 위키백과쪽이 더 편합니다.


5.

 혹 아래의 논문을 구하실 수 있는 분들 댓글 달아주세요...

 Alexios Savvides, “Soleyman Shah of Rûm, Byzantium, Cilician Armenia and Georgia, A.D. 1197-1204,” Byzantion 73, 2003, pp. 96-111.




이어지는 내용

명나라의 황제들은 몽골인이었다! by Khayr

▲ 명의 영락제. 그림은 위키 미디어 공용에서 가져옴.(참고)


 원대 이후 몽골인들의 중국의 옥좌에 대한 관념에 대해 다루면서 17세기에 쓰여진 《황금사》(Altan Tobci)가 소개하는 흥미로운 몽골 전설을 빠뜨리면 안 된다.9) 이 책에 따르면 명태조 홍무제는 원의 수도를 함락한 이후 본디 토곤 테무르의 아내들 중 한 명이었으며, 그 시점에서 아이를 벤지 2~3개월 가량 지난 몽골인 공주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심 때문에 임신 기간이 길어지기를 기도했다. 마침내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자 명태조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했는데, 후에 이 아이가 영락제로서 그를 계승했다. 물론 실제로 명태조를 계승한 것은 그의 손자였고, 영락제는 이 손자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었다. 이 전설은 17세기에 독자적으로 쓰여진 여러 몽골 연대기들에서도 발견되며, 19세기 오르도스 지방의 구전에서도 남아있었다.10) 중국의 제위에 대한 몽골인들의 주장은─비록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전설에서 나마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9) Bawden, 1955, pp. 154-5.
10) Serruys, 1972, pp.19-20.


Veit, Veronika. 2009. “The eastern steppe: Mongol regimes after the Yuan (1365-1636).” The Cambridge History of Inner Asia: The Chinggisid a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의 160쪽에서 인용.


은/는 훼이크고 몽골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ㅠㅠㅠ




티무르 직할 병력의 규모 by Khayr

티무르의 유골을 토대로 만든 흉상

  만츠에 따르면, 티무르의 휘하에 어느 정도의 병력이 있었는지, 그 병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 전해주는 사료는 없다.(Manz 1989:76) 다만 티무르가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병력에 대해서 추측할 단서는 있다. 만츠가 《승전기》(Zafar-Nama)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티무르의 치세 후반에 그의 후손들이 이끈 만호(tümen)가 9개 이상이었고, 그의 추종자들(부족적 전통이 취약한 부하들)이 이끈 만호가 13개였으며, 여기에 더해 몇 개의 연대(regiment; qoshun의 영역 표기인듯)들이 있었다.(Manz 1989:77)

 만츠의 글에서 제시된 바에 따르면, 티무르의 휘하에는 최소한 21개의 만호가 존재했는데, 그렇다면 하나의 만호는 어느 정도의 병력을 지니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김호동 교수께서 연구하신 바에 따르면 1개 만호는 3,000명에서 4,000명 사이의 군인들로 이루어 졌을 것으로 추측된다.(김호동 2007:32-33)

 이렇게 계산을 해보면 티무르의 휘하에 있던 그의 직속 병력은 7만명에서 8만명 또는 그 이상의 숫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김호동. 2007. 《몽골제국과 고려 : 쿠빌라이 정권의 탄생과 고려의 정치적 위상》. 서울 : 서울대학교출판부.
 Manz, Beatrice Forbes. 1989. The rise and rule of Tamerlane.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티무르 가문의 상징


* 이 글에 삽입된 사진그림은 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의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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